미나모토노 요시쓰네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일본어:
[편집] 생애
요시쓰네는 헤이지의 난(平治の乱)이 한창이던 1159년에 태어났다. 아버지인 요시토모는 장남인 요시히라(義平), 차남인 도모나가(朝長)와 함께 헤이지의 난 중에 죽었다. 이에 요시쓰네의 생모인 도키와고젠(常盤御前)은 어린 세 자녀를 데리고 야마토노쿠니(大和国)의 산으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에게 붙잡힌 것을 알자 자식들과 함께 기요모리 앞에 출두한다.
훗날 고젠은 이치조 나가나리(一条長成)와 혼인하였다. 7살인 요시쓰네는 이후 교토 근교의 구라마 사(鞍馬寺)에 맡겨졌고 자신의 이름을 샤나오(遮那王)라 하였다. 11세(또는 15세)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스님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무예를 갈고 닦는다. 헤이케(平家) 토벌의 뜻을 품고 16세가 되던 해에 구라마 사를 나서 오슈(奥州)의 후지와라노 히데히라(藤原秀衡)를 찾아간다.
1180년(지쇼 4년)에 이복형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이즈(伊豆)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그 휘하에 참여하였다. 요리토모는 그 자신은 동쪽을 다스리는 데 전념하고, 동생인 미나모토노 노리요리(源範頼)와 요시쓰네에게 군권을 맡겨 헤이케 토벌에 나서게 한다. 1181년에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죽은 후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겐지는 헤이케의 세력을 교토에서 몰아내었다. 교토를 점령하고 있던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와 요리토모의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1183년 요시쓰네는 오미노쿠니(近江国)로 진격하였고 1184년에 마침내 요시나카의 군대를 무찌르고 교토에 입성한다.
그 사이 헤이케는 힘을 회복하였고 요시쓰네는 군사를 이끌고 이를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 이치노타니 전투(一ノ谷の戦い), 야시마 전투(屋島の戦い)를 거쳐 1185년 음력 3월 24일에 벌어진 단노우라 전투(壇ノ浦の戦い)에서 다이라 씨를 멸망시킨다.
이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의 사이가 벌어져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가신들과 함께 오슈의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에게 몸을 의탁한다. 하지만 히데히라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인 후지와라노 야스히라(藤原泰衡)에게 배신당해 1189년 처자를 죽인 후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