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억원의 빚을 졌습니다. 사람은 삼성, LG로 다 빠져나갔고요. 그때 정부나 대기업이
소프트웨어(SW)에 관심을 가졌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때 국내 최대 SW 회사였던 티맥스소프트의 전 임원은
구글롤라(구글+모토롤라) 등장으로 SW 산업이 다시 강조되자 울분을 토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맞짱을 뜬다는 각오로 국산 SW 개발에
매진했으나 계속된 경영 악화로 지금은 법정관리에 놓인 상태다. 특히 핵심이었던 운영체제(OS) 개발 인력(티맥스코어)은 인수ㆍ합병을 통해 삼성에
넘어갔다. 이 임원은 "국가 SW 경쟁력의 핵심은 기업일 텐데 지금 국산 SW 기업 중 매출 1000억원을 넘긴 기업이 10년째 없다"며 "지금
받고 있는 관심도 반짝 관심 아니겠는가"고 말했다.
# 국산 검색엔진 벤처 `큐로보`는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간 유망 업체.
이 회사 조관현 사장(31)의 고민은 `지방이전자금`을 둘러싼 테크노파크와의 갈등 해결이다. 조 사장은 "대통령도 다녀갔는데 그 이후 지원은커녕
투자만 계속하고 있다"며 "SW 기업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와 지자체가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한 데 이어 세계 1위 PC 업체 HP도 소프트웨어 올인을 선언하는 등 최근 글로벌 IT 시장
구도가 급변하면서 IT코리아가 2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드웨어 제조업 기반, 통신 네트워크(망) 중심의 한국 IT 산업
구조가 한 번에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특히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인 SW 경쟁력은 IT 산업은 물론 제조, 금융, 국방 등 전체 국가
산업의 경쟁력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글로벌 IT 산업은 실리콘밸리의 스티브 잡스(애플 CEO)와 래리 페이지(구글
CEO)가 만든 구상대로 흐르고 있다. 강력한 SW 경쟁력(아이튠즈, 구글 검색)을 기반으로 하드웨어(아이폰, 모토롤라)를 결합하고 이를
서비스로 구현하는 능력이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네트워크 서비스`의 융합인 소위 `트라이버전스(삼중 융합)`는 MS, IBM,
시스코 등 글로벌 IT 기업의 공통된 방향이다.
그러나 한국은 고질적인 `소프트웨어 홀대`로 전체 산업 붕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분석한 `한국 SW 산업의 경쟁력 분석` 결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
회원국 중 하위권인 14위에 머물렀다. 한국의 산업 생산 내 SW 활용도는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34.2%)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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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설명 >
트라이버전스(Trivergence) :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서비스가 융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PC 기반의 인터넷, TV 기반의 미디어, 휴대폰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운영체제(OS)와 스마트폰
제조(하드웨어)의 결합은 이제 `대세`가 됐다.
◆ 위기의 IT코리아…2008년 IT한국의 3가지 실패
① 정통부
폐지 ② IT예산 축소 ③ 하드웨어에 집중
방통위는 "예산 없다" 지경부는 "관심 없다"…부처별 떠넘기기 급급
"우린 어디 가서 기대야 하나요. 방송통신위원회는 예산이 없다고 하고, 지식경제부는 관심도 없어요."
과거 정부가 육성했던 한국형 모바일 플랫폼 `위피`를 개발하다 최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사로 변신한 한 IT 벤처기업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3~4년 전만 해도 정부가 추진하는 계획대로 기술을 개발하면 투자비는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정부 측 몰이해와 무관심이 `IT 코리아` 위기를 부추겼다. IT를 지원하는 정부 기능이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IT에 대한 무게감이 작아졌다는 분석이다.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벤처캐피털
투자에 선순환 체계가 없는 한국에서 정부 측 무관심은 중소 IT기업들에 `돈 가뭄`을 가져왔다.
실제 2008년 새 정부 들어
IT에 대한 정부 측 투자는 10% 가까이 줄었다. 2006년 1조6260억원 수준이던 IT 관련 정부 투자액은 2007년 1조9079억원으로
증가했지만 2008년에 1조7269억원으로 떨어졌다. 2008년 이후 자료는 아예 집계되지 않아 정부가 무관심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분야에 여러 소관부처가 있다 보니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콘텐츠 소관부처 문제는 오랫동안 부처 간 갈등을
빚은 주제였다. 급기야 방송 콘텐츠는 방통위가 담당하고 나머지 문화 콘텐츠는 문화부가 맡는 기형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결제
기술인 근거리결제(NFC)를 두고 방통위와 지경부가 각각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통신, 방송, 소프트웨어, 콘텐츠, 네트워크 등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애플처럼 단말기 제조사이자 플랫폼 서비스 사업자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문제는 바로 IT 경쟁력 하락을 불러왔다.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개발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까지 1위였던 한국 ICT 경쟁력은 2009년 2위, 2010년 3위로 떨어졌다.
세계경제포럼(WEF) 네트워크 준비지수 순위도 2007년 9위에서 지난해 15위로 추락했다.
소프트웨어를 제조업 중 부품산업
정도로만 이해해 왔던 정부의 각종 정책도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IT 투자예산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지식경제부조차 하드웨어에 중심을 두고 투자를 집행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전체 IT 투자 예산 중 5분의 1(2000억원)
정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 해 소프트웨어 예산이 10억원에도 못 미친다.
소프트웨어 관련 부서를 2개 운영 중인 지경부는 애플
아이폰 약진을 계기로 2009년 초부터 소프트웨어 공동 운영체제(OS) 구축을 위해 국내 기업들 의견을 수렴해왔다. 그러나 "독자적인 OS
전략을 유지하겠다"거나 "국내 업체(삼성) 영향력 아래 놓이든, 외국 업체(구글) 영향력 아래 놓이든 다를 게 없다"는 식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뚜렷한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개방형 플랫폼을 앞세운 구글 안드로이드의 시장 지배력 확대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삼성 LG 등과
공동으로 올해 하반기 `국가대표급 OS`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1급)은 22일
"웹에 기반한 오픈형 OS를 공동으로 개발해 독자적으로 OS 기반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하반기 추진 중인 월드 베스트 소프트웨어
3차 프로젝트에 공동 OS 컨소시엄 계획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계획대로 순조롭게 기업들이 동참할지, 그리고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항 체제가 구축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해 2월 소프트웨어 생태계 재편과 신수요 창출, 인재 양성,
외국 진출 등을 골자로 한 4대 핵심전략과 12개 정책과제를 범부처 차원에서 지정했지만 소프트웨어 산업 분야에서 비약적인 경쟁력 강화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 전략이 뚜렷하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부처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 만큼 정치권을
중심으로 IT 컨트롤타워를 부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국내 기업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는 만큼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판단이다. 민주당은 최근 IT 컨트롤타워인 정보미디어부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전문가들 역시 세분된 IT 정책을 한데 모아 추진할 수 있는 IT 컨트롤타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IT산업의 멸망` 저자인 김인성 씨는 "현재 소프트웨어를 관리할 정부 컨트롤타워가 없다. 과거처럼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처를 부활시켜 역할 분담과
협업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 역시 "지식경제부에 IT는 일부분일 뿐이고 문화관광체육부는
문화관광이 중심, 방통위는 방송이 현안"이라면서 "IT에 대한 목표가 없으니 관련 부처가 모두 겉돌고만 있다"고 강조했다.
◆
구글 눈치보는 반도체왕국 이대로가단 3년내 몰락의 길로
세계 최대 검색기업인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세계 1위 PC업체인 HP의 PC사업 매각으로 촉발된 글로벌
IT전쟁으로 IT코리아는 20년 성장가도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미래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불확실성으로 국내 IT기업 주가는 급락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네크워크와 결합해 새 시장을 열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하드웨어와 네트워크만 강조하다가 세 가지 축 중
하나인 소프트웨어가 몰락했다. 한국 SW산업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심각한 위기다. 우리는 제조업 기반
하드웨어에만 집중돼 있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서비스나 콘텐츠의 가치가 하드웨어를 역전한 것이 오래전이고 그 가치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생태계를 디자인할 계획이 전무한 상태다."
국내 최고 IT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심각한 위기`, 마치 최소
데프콘 1, 2단계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했다. 산업구조는 대기업 위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구시대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이윤을 남기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소프트웨어(SW) 개발비도 몇 명이 몇 시간 했느냐는 산출 방식이 관행으로 잡혀 있다.
창의적 SW 개발도 `시간당 계약`에 묻혔다. 산업구조의 근본 패러다임 변화 없이 한국 IT 산업의 경쟁력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은 여전히 반도체, LCD, 단말기 제조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가 중요하다고 강조됐는데 특히 정부도 소프트웨어의 당장의 실적만을 보지 몇 년 후에 어느 위치를 추구하자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지 않다.
즉 소프트웨어 개발의 생태계 조성이 안 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해법도
다양하게 제기됐다. 주로 단기적 처방이 아닌 `근본적 처방`을 요구했다.
이석채 KT 회장은 "한국은 지금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앞서가는 선진국과 하드웨어 분야에서 추격하는 신흥개도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다. 위기에서 탈출하려면 소프트웨어 인재를 대기업ㆍ중소기업 간
`갑을병정` 관계가 아닌 우리의 자산으로 대우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혁명은 국가, 시간, 공간 등 모든 경계를 의미 없게 할
것이다. 전 세계 콘텐츠를 제한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때가 올 것을 대비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강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동안 한국 IT기업들이 국내에서 너무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친 것도 바꿔야 한다. 마케팅비를 해외 투자와 신규
서비스 개발로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훈 관동의대 교수는 "산업 면에서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려면 말만이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과 콘텐츠 개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제조업에서 성공 평가를 내리는 3개월 위주의 단기적인 평가 체질을 고쳐야만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인력양성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운영체제(OS)`를 대학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OS를 잘 알아야 좋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OS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
또 대학생들을 제조업에서 1년간 일하게 해야 한다. 광운대 총장 시절 기업에서
인턴을 하면 한 학기 전체 학점인 18학점을 인정해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기업은 정상 급여의 80%를 학생에게 지급하고 `인재
평가서`를 쓰게 했다. 이런 것들을 많이 해야 어떤 능력이 우리나라 IT 발전에 필요한지 서로 알게 된다"고 말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삼성만 하더라도 인도에서
3000명을 고용하는데, 왜 나가겠느냐. 한국에 수요가 있으면 안 나갈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올 수 있다"며 "SW 인력 15만명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김은현 SW저작권협회 회장직무대행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동반 성장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전 세계 SW시장은 1조121억달러 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는 반도체 시장의 3.4배, 휴대폰 시장의
6배 규모. 소프트웨어 산업의 부가가치율(49.6%)은 제조업(24.6%)의 2배다. 그러나 한국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로 인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김명호 MS코리아 내셔널 테크놀로지 오피서는 "한국에선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인식이 낮아서, 나이 들어서 개발자로 남아 있으면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문제다. 인식과 처우가 낮으니 개발자들도 어느 정도 하다가
관리직으로 옮기려고만 한다"며 "MS 본사의 경우 90년대 초반 윈도NT 개발을 주도했던 데이브 커틀러가 지금도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경험을 통한 기량 향상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연륜 쌓인 개발자가 없는 게 문제"라며 인력 문제를 제기했다.
[손재권 기자 / 채수환 기자 / 황지혜 기자 / 김명환 기자]